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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콩은 왜 삶으면 무늬가 사라질까?


초여름 시장에 나오는 호랑이콩은 흰 바탕에 자줏빛 호피 무늬가 선명해서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콩인데요, 막상 밥에 넣거나 삶고 나면 그 예쁜 무늬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밋밋한 갈색 콩이 되어 버려서 당황하셨던 분이 많을 겁니다. 내가 콩을 잘못 삶은 건가 싶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건 조리 실수가 아니라 무늬 색소의 성질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호랑이콩은 강낭콩의 한 품종으로, 껍질의 자주색 얼룩무늬는 안토시아닌이라는 수용성 색소가 만든 것인데요. 안토시아닌은 물에 잘 녹고 열에 약한 성질이 있어서, 뜨거운 물에서 삶는 동안 껍질 밖으로 녹아 나오고 남은 색소도 열에 분해되면서 색이 변합니다. 검은콩 삶은 물이 검붉게 우러나는 것과 같은 원리인데, 호랑이콩은 무늬 부분에만 색소가 몰려 있다 보니 색이 빠지고 나면 무늬 자체가 지워진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흰 바탕 부분은 원래 색소가 없으니 전체적으로 연한 갈색의 민무늬 콩이 되는 겁니다.

 

아쉽지만 무늬를 살린 채 익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는데요. 색소가 덜 빠지게 살짝만 데치면 콩이 설익어 비린내가 나고, 강낭콩류는 덜 익히면 렉틴이라는 성분 때문에 배탈이 날 수 있어 충분히 익히는 게 안전 면에서도 필수입니다. 무늬는 포기하는 대신 맛으로 보상받는 콩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마음 편해요. 호랑이콩은 강낭콩 중에서도 알이 굵고 전분질이 많아 삶으면 밤처럼 포슬포슬하고 단맛이 도는 게 진짜 매력이라, 콩밥용으로는 손에 꼽히는 품종입니다.

 

맛있게 먹는 요령을 드리면, 햇콩 꼬투리째 사 온 생콩은 불리지 않고 바로 밥에 안쳐도 부드럽게 익는데요. 밥물을 잡을 때 콩을 쌀 위에 얹기만 하면 밥솥이 알아서 익혀줍니다. 마른 콩이라면 대여섯 시간 불린 뒤 쓰는 게 좋고, 삶아서 으깨면 단팥 대신 쓰는 콩소나 샐러드 토핑으로도 잘 어울려요. 삶은 콩은 한 번 먹을 만큼씩 나눠 냉동해 두면 한참 두고 쓸 수 있습니다.

 

제철에 고르는 눈도 잠깐 짚어드리면, 꼬투리째 파는 햇콩은 꼬투리가 통통하고 만졌을 때 알이 단단하게 만져지는 게 좋은 것인데요. 까놓은 콩은 무늬가 선명하고 표면에 윤기가 도는 것을 고르시면 됩니다. 6~7월 한철 나오고 들어가는 콩이라, 이 시기에 넉넉히 사서 데쳐 냉동해 두는 분들이 많아요.

 

정리하면 호랑이콩의 무늬가 삶으면 사라지는 건 물에 녹고 열에 약한 안토시아닌 색소의 성질 탓이지 솜씨 문제가 아닙니다. 무늬는 장바구니에서만 즐기는 것으로 하고, 포슬한 식감과 단맛이라는 본업으로 평가해 주시면 여름 콩밥이 한층 즐거워져요.


The goal of life is living in agreement with nature. – Zeno